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gamification 게임 이야기

지난 6월 14일, gamification 연구회(가칭)에서 발표한 내용을 글로 조금 다듬었습니다(아무래도 글로 쓰다 보니 내용이 조금 달라지네요).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애피타이저처럼 간단히 즐기기 위한 것이었던만큼, 동영상 포함해서 5분 좀 넘는 간단한 발표였고요. 

원래는 지난 번 TEDx부산 발표를 준비하면서 마련했던 내용인데, 그땐 내용이 너무 많고, 주된 흐름도 깨는 바람에 최종 발표본에서는 뺐었는데요.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살릴 수 있었네요. :)

1. 영화의 결말을 비롯해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영화의 스틸샷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그 속에서 드러난 게임과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해 짧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게임의 정의'에 대해서 짚어보겠습니다.

게임의 정의에 대해서 여러 얘기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게임은 '게임 디자이너가 플레이어가 정해진 룰에 따라 행동해서 디자이너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과 같이 디자이너가 정한 목표가 있고, 디자이너가 정해놓은 룰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 자신의 목표를 갖고, 보상을 향해, 정해진 룰에 따라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플레이를 진행하면서 룰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실패하게 되고, 실패에 따른 벌칙을 받습니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다시 플레이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룰에 맞추면서 성공하게 되는 피드백 과정을 밟고, 결국에는 목표에 도달해서 보상을 얻게 되죠.

장르의 특성이나 기타 요소들을 모두 빼고, 모든 게임의 공통 요소들을 뽑아보면, 위와 같이 네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 게임의 목표가 있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룰이 있습니다. 또한, 플레이어가 룰에 맞게 행동하는지 확인하고, 룰에서 벗어났다면 룰에 맞춰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피드백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자, 게임을 규정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겠죠.

오늘 말씀드리려는 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게임인데요. 이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게임 요소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영화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 드리면,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이고, 유머 넘치는 유태인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룬 다음, 강제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아빠는, 전쟁과 강제 수용소, 학살처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어린 아들이 어떻게든 상처 받지 않고 무사히 버틸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는데요. 일단 한 번 보시죠.

영화 중반, 주인공 가족이 강제 수용소로 처음 들어서는 장면입니다. 굉장히 불편한 기차를 타고 왔고, 군인들이 강압적으로 줄을 세우는 바람에, 아이는 굉장히 시무룩해있는 상황입니다. 아빠는 어떻게든 아이의 기분을 달래려고 하죠. 

아빠: 봤니? 질서가 끝내주지? 줄 선 거 봤어? 줄서서 안에 들어가는 거야. 다들 들어가고 싶어하거든.

아들: 무슨 게임이야?

아빠: 맞았어. 이건 게임인데… 무슨 게임이냐면… 우린 전부 선수야. 질서 정연하잖아. 남자는 이곳에, 여자는 저곳에. 밖에 있는 군인은 일과를 가르쳐 주지. 힘들 거야. 절대 쉽지 않아. 실수하면 그 자리에서 집에 보내버려. 그러니까, 아주 조심해야 해. 하지만 이기면 일등상을 탈 수 있어.

아들: 상품이 뭔데?

아빠: 일등상은…

작은 할아버지: 탱크란다.

아들: 탱크는 이미 있어.

아빠: 이건 진짜 탱크야. 완전 새 거지.

아들: 정말?

아들의 '이거 게임이야?'라는 한 마디에, 아빠는 즉석에서 게임을 하나 만들기 시작합니다.

위와 같이 기본적인 룰과 페널티, 그리고 보상이 나왔죠. (영화의 이전 화면들을 보면 아이는 장난감 탱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진짜 탱크는 정말 대단한 보상이죠.)


영화는 이어서 수용소의 숙소로 이동합니다. 아빠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아이가 기분 좋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합니다. 그 와중에 독일군 병사가 수용소 규칙을 설명해주러 도착했고, 아빠는 아이가 '이 모든 것은 게임이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엉터리 통역으로 아이에게 게임 규칙을 전달해줍니다.

또 다른 유태인: 독일어 할 줄 아세요?

아빠: 아뇨.

독일군 병사: @*^#*&$^(&&(*!@(!@#&!(@*#&@!*(#&(. 

아빠의 엉터리 통역: 이제부터 게임 시작이다. 오지 않은 사람은 제명한다.

독일군 병사: @!*&#^!@&#$%#^&*$!@*(*&@!#.

아빠의 엉터리 통역: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우승자이며 상품은 탱크이다.

독일군 병사: !@*^&!@.

아빠의 엉터리 통역: 잘해보도록.

이후 말이 한참 이어지지만, 시간 관계상 끊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옵니다.

아빠는 독일군 병사의 입을 빌어 게임 시작을 알렸고, 독일군 병사가 수용소의 모든 사람에게 공지하는 권위를 게임 룰을 선언하는 데에 이용합니다.

그리고 독일군 병사의 뭔지 모를 말에 맞춰, 즉각적으로 게임의 룰을 아들에게 하나씩 공지합니다. 

아이는 '아, 이게 정말 게임이구나.'하면서 신이 나서 듣지요. 

이후 영화는 수용소의 힘든 생활을 그립니다. 아이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아빠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수용소 생활을 그럭저럭 해나가고요. 아빠는 틈이 날 때마다 '오늘 간식 안 달라고 했으니 넌 점수 몇 점이야. 그러니 상으로 (배급받은) 빵을 줄게.'하는 식으로 피드백 시스템과 작은 보상들을 제공하죠.

하지만, 수용소의 생활은 가혹했고, 나치가 아이들부터 죽이면서 아들은 혼자 남게 됩니다. 사람을 죽여 비누를 만든다는 등 끔찍한 얘기를 들은 아들은 이제 이 게임에 흥미를 잃고, 게임을 그만두려 합니다. 아빠가 지금까지 공들여서 만들어온 '이건 니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아니다. 이건 니가 좋아서 하는 게임일 뿐이다.'라는 프레임이 깨지려는 순간이죠.

아빠: 똑똑히 들어. 내일은 악당들과 자루 달리기를 할거야.

아들: (단호하게) 그만하고 집에 갈래.

아빠: 지금?

아들: 지금 당장!

아빠: (당황하며) 비가 오는데? 감기 들면 어떡하니?

아들: 상관없어, 어서 가.

아빠: (체념했다는 듯이) 좋아, 가고 싶다면 짐을 꾸려서 떠나자.

아들: 가도 돼?

아빠: 당연하지! 저 사람들이 억지로 잡기라도 할까봐서?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하하. 그런 법이 어딨냐! 얼마나 좋겠냐, 가자! (짐을 꾸리며) 가방을 싸서 여길 나가는 거야. 아깝다. 우리가 일등이었는데, 싫으면 그만 둬야지. 다른 애가 진짜 탱크를 타겠구나. 

아들: 다른 애들은 없어. 나 밖에 안 남았어.

아빠: 애들이 없다구? 얼마나 많은데!

아들: 지금 어딨어?

아빠: 전부 숨어 있어. 들키면 안 되거든. (아이의 옷을 입히며) 이건 어려운 게임이야. 

아들: 난 모르겠어. 지금 몇 점이야?

아빠: 687점…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잖니. (짐을 집어들며) 어서 가자. 이기고 있었지만 가겠다면..

아들: 우리가 이기고 있었어?

아빠: 일등이야, 말했잖아.

이것이 자의로 그만 둘 수 있는 게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아들은 현재 목표에 가장 가까운 일등이라는 상황을 포기할 수 없게 됩니다. 문밖에서 비를 맞으며 자신을 기다리는 아빠에게 자발적으로 남겠다고 말하게 되죠.

이로써 다음과 같이 완벽한 형태의 게임이 완성되었습니다.

영화는 몇 가지 자잘한 장치들(예: 아빠가 위험을 무릅쓰고, 놀러와서 숨바꼭질하는 독일 아이들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게임 프레임을 강화하는 장면)을 거치면서 마지막을 향해 흘러 갑니다.

나치는 결국 패망하고, 텅빈 수용소에 홀로 남은 아들은 연합군의 탱크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등상. 게임의 보상. '진짜 탱크' 말이죠.

현실의 본질을 가려 왜곡시켰다고, 책임질 수 없는 보상을 미끼로 아들의 행동을 아빠의 뜻에 맞게 마음대로 '조종'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로서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가혹한 현실을, 아빠는 '게임'이라는 형태로 아들이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아빠는 훌륭한 게임 기획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해할 수 없고, 지루하고, 무섭고, 버티기 힘든 현실을, 플레이어 자신이 능동적으로 성취감을 느끼며 행동할 수 있는 게임으로 바꾼, 일종의 멋진 gamification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핑백

  • OO 디자인 공부합니다. : 블로그 첫 페이지 2012-11-13 00:12:48 #

    ... 10월) * 게이미피케이션 - Gamification의 과거, 현재, 미래 (2011년 7월@한국 게이미피케이션 연구모임 오픈세미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gamification (2011년 6월@한국 게이미피케이션 연구모임) * 게임과 플랫폼- 달리는 플랫폼에 올라타기: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2012년 ... more

덧글

  • 길고양이 2011/06/16 01:57 # 답글

    와우.. 저 장면 보고 얼마나 가슴찡했던지., 기획자 마인드는 역시 다르군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
  • 하라위시 2011/06/17 19:52 #

    네, 영화 참 좋았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람 2011/06/19 03:03 # 삭제 답글

    gamification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으로 몇년전부터 이런 개념을 생각해왔지만, 못찾고 있었는데.. 작년에서야 미국에서 이런 단어를 쓰고 서미트도 한다는 걸 알겠됐죠.. 좋은 사례인데 퍼가도 될까요?
  • 하라위시 2011/06/19 14:15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져가실 지는 모르겠지만, 전문 게재보다는 링크로 이용해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naly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