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차쿠차] 장사를 하려면 레고처럼 그외 이야기

회사 워크샵에서 자유 소재로 페차쿠차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정식 페차쿠차 규칙대로 '총 슬라이드 20장, 각 슬라이드 20초 자동 진행'을 하려고 했었는데, 실제 해보니 시간은 조금 넘더라고요. 만들면서 꽤 재미있었기에 올려봅니다. 


사진의 레고는 제가 2009년에 처음 산 레고에요. 별 생각없이 하나 사봤었죠.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되었네요. 한달에 5-6만원씩은 꼭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레고에 왜 돈을 쓰는지 생각해봤어요. 일단 레고를 조립할 때 재미있고, 보기에 예쁘고, 조립하는 손맛도 좋고, 조립이 쉽고, 설명서는 친절하고, 유사품에 비해 굉장히 튼튼하고 품질도 좋거든요. 


하지만, 그런 건 한두 개 살 때나 통하는 설명이지, 왜 레고를 '계속' 사느냐에 대한 답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게임 분석에 쓰는 ARM funnel, 즉 Acquisition, Retention, Monetization 측면에서 레고를 살펴 보기로 했어요. 


먼저 유저 acquisition 측면인데요. 레고에는 여러 시리즈들이 있어요. 화면 중앙에 있는 Creator 시리즈가 가장 기본이 되는 시리즈인데요. 가장 기본이고 재미있지만, 유아기의 아이들이 조립하기에는 어렵고 삼킬 위험도 있죠. 유아기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시리즈가 Duplo이고요. Creator 시리즈가 너무 쉬운 십대 후반이나 성인들을 위해서는 Technic 시리즈를 마련해놓고 있어요. 그리고 Creator 시리즈로 집이나 성을 만들다 보니, 좀 더 제대로 된 집이나 성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용자들이 생겼고, 이들을 위해선 각각 City와 Kingdom 시리즈를 준비해놨는데, 여기까지가 레고의 가장 기본 라인업이죠. 반면, 초등학생쯤 되는 남자아이들은 한손에 잡히는 커다란 로봇들을 갖고 노는데, 이들을 위해서 마련한 게 Bionicle 시리즈고요. 레고가 남녀노소에게 인기있는 편이지만, 인형놀이나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열살 부근의 여자아이에겐 덜 매력적이었는데, 이들에게 야심차게 내놓은 게 Friends 시리즈에요.

다양한 연령, 성별의 사용자가 좋아할 수 있는 제품군을 준비해놓고 있는 거죠.


뿐만 아니라, 레고는 다양한 IP를 활용한 시리즈도 내놓고 있는데요.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어벤저스, 카, 해리 포터 등등 수많은 IP 기반 시리즈가 있어요. 단순히 레고 블럭만 내놓는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해 비디오 게임도 내놓고 있는데 이들도 모두 괜찮은 편이에요. 

레고가 뭔지는 알지만 굳이 살 생각까진 없던 사람이라도, 특정 IP의 팬이라면 해당 IP의 레고 제품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팬이 탄탄한 영화, 만화, 게임 등에서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키는 거죠. 


외부 IP를 활용할 뿐만 아니라, 레고는 그동안 여러 시리즈에 테마와 이야기를 담아 독자적인 IP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중 최근에 성공한 것이 닌자고 시리즈인데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인기를 끌자, TV 시리즈로 제작해서 방영하고 있어요. 카드 배틀 요소도 있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이 아주 열광하는 편인데요. 올해 마트 등에서 유일하게 품절되곤 했던 시리즈가 바로 이 닌자고에요. 

다양한 연령대, 성별에 맞춤형 시리즈를 제공하고, 외부 IP를 통해 기존 IP 팬의 유입을 노리는 한편, 특정 시리즈를 TV 애니메이션 등의 다른 매체로 내보내 독자 IP의 팬 또한 만들어가는 거죠.


다음으로 retention 부분인데요. 한 번 갖고 놀다가 지겨워지면 더 이상 갖고 놀 수 없는 다른 장난감과는 달리, 레고는 한 번 만들었다가 다시 분해했다가 다른 형태로 재조립하는 등 본질적으로 여러 번 갖고 놀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한 제품 자체의 retention이 높은 거죠.


 그리고, 달마다 쏟아지는 신규 컨텐츠의 양도 엄청난데요. 이건 아까 여러 개의 시리즈 중 시티 시리즈의 올해 1월, 2월, 3월에 국내 발매된 제품 목록이에요. 시티 시리즈 하나만 해도 한 달에 4~7개의 신제품이 나온 셈인데요. 전부 다 모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정도죠. 하지만, 시리즈의 팬이라면 맘에 드는 것이 한 달에 최소 1-2개 정도는 충분히 있을 확률이 높을 테고요. 


그리고, 시티 시리즈만 신제품이 나오는 게 아니랍니다. 올해 월별로 신제품이 있었던 시리즈들을 뽑아 본 건데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 시리즈마다 월별 최소 3-5개의 신제품이 나오는 편이니, 레고 매대에는 늘 새로운 즐길 것들이 가득한 것이죠. 

4월의 신제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눈에 띄는데요. 연말에 이어 3월 정도까지 신제품들을 많이 내놓고, 이를 4월까지 매대에 유통시키면서 소비자들의 신제품 욕구를 어느 정도 끌어올린 다음, 어벤저스가 개봉하고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어벤저스 시리즈와 공룡 시리즈를 짜잔-하고 내놓은 거죠. 


다음으로는 monetization 부분인데요. 먼저 박스 아트에요. 왼쪽 위에 있는 게 제가 실제로 갖고 있는 레고 장난감이에요. 그 자체로도 귀엽고 나쁘지 않은 편인데요. 실제 판매용 박스를 보시면, 배경을 공사장으로 그려서 좀 더 현장감있고 '이야기'를 느낄 수 있게 해놨어요. 뒷면을 보시면 이 모델의 어떤 부분이 움직이는지를 강조해서 '실제로 어떻게 갖고 놀 수 있는지'를 그려놨고요. 박스 크기만으로는 제품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박스의 옆면에는 부품을 1:1 축척으로 표시해서 박스 아트를 보며 제품의 실제 크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놨죠. 제품만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이걸 조립하면 어느 정도 크기의 물건이 나올 테고, 나는 이걸 갖고 이렇게 저렇게 갖고 놀 수 있겠구나."를 상상하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레고에는 가끔 보너스 프로모션이 있어요. 왼쪽은 제가 구입한 작은 전기 자동차 모델인데요. 실제로 상자를 뜯고 나니, 왼쪽 아래처럼 원래의 전기 자동차 모델 외에 다른 작은 차가 한 대 더 들어있었어요. 뭔가 공짜로 선물받은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고, 덩달아 레고에 대한 인상도 더 좋아져요. 레고 회사에서는 이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도 쓰는데요. 예를 들어 오른쪽의 헐크 피겨는 해외에서 총구매액이 얼마를 넘는 사람들에게 지급한 비매품 프로모션이에요. 따로 구입할 수가 없기 때문에 희소성이 늘어났고, 이때문에 이베이 등에는 이런 프로모션만 따로 판매하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에요.  


또한 재미있는 건 레고의 다양한 가격대에요. 예를 들어 이건 시티 시리즈에서 경찰에 해당하는 제품 중 일부분인데요. 각각 전부 개성이 있으면서도 어쨌거나 '경찰'이라는 공통 테마가 있다보니, '대체제'로서 구입하는 게 가능해져요. 예를 들면 마트에서 아이가 "엄마, 나 경찰관-"하면서 14만원 짜리를 들고 오는 거죠. 그럼 부모는 "어, 그건 안 돼. 이것도 경찰관인데, 이거 사."라며 7500원 짜리 경찰관을 제시하겠죠. 아이와 부모가 얘기를 하다 보면 "그럼, 이거라도"라는 식으로 2만원 또는 5만원 대 제품을 사는 경우도 있을 거에요.


다음으로 레고는 이야기의 힘이 굉장히 강해요. 기존에 갖고 있던 모델에 새로운 모델을 더했을 때 거기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보니, 그게 바로 구매 욕구로 이어지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시티 코너 모델을 샀는데, '작은 마을에 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 말고, 자가용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으면 좋겠는데?' 싶어 전기 자동차 모델이 끌리기도 하고, '이 시티 코너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소방차를 놓고 싶고, 시티 코너에 가로등이 있는데 '이게 고장 나면 누가 고치지?'라는 이야기를 넣고 싶어지면 가로등 수리 트럭을 사고 싶어지는 거죠. 


앞에서 엄청난 물량의 신제품을 보면서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제한된 매대에 신제품을 진열하려면 자연히 단종되는 모델들이 생겨납니다. 인기 있는 모델은 더 오래 팔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델은 4-5개월 뒤면 사라지기도 하는데요. 이렇듯 '기간 한정'이라는 걸 알고 나면 좀 더 물건을 바라는 욕구가 커집니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의 레미콘 모델은 색깔도 그렇고 정말 갖고 싶은 모델이지만, 2007년 제품이라서 구하기가 매우 어렵죠. 오른쪽의 녹색 청소차 모델은 지난 3월에 나왔는데요. 몇달 째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모델이에요. 이제 두세달 뒤면 마트 매대에서 빠질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더 고민하게 되는 거죠.


다음으로 레고에는 일종의 럭셔리 라인도 있습니다. 소위 10,000 번대 모델인데요. 대부분 20만원대로 아이를 위한 제품이라기보단 레고의 열성팬인 성인을 위한 제품이죠. 10,000 번대 모델들은 저도 아직 구경만 해봤는데, 확실히 일반 모델에 비하면 그 크기나 정교함이 뛰어나서 만족감이 대단할 것 같더라고요.


레고는 건물이나 탈 것 표현도 좋지만, 여러 캐릭터를 레고 특유의 미니 피겨로 표현했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좋은데요. 특정 IP의 팬이라면 해당 IP의 레고 미니 피겨를 정말 갖고 싶어지거든요. 그리고 레고는 이를 잘 활용해서 패키지를 구성했어요. 최근에는 어벤저스 관련 제품들이 특히 그랬는데요. 저 거대 헐크는 참 잘 나왔는데, 왼쪽 아래의 모델에만 들어있었어요. 캡틴 아메리카는 오른쪽 아래 제품에만, 호크아이는 오른쪽 위의 제품에만, 블랙 위도우는 왼쪽 위 제품에만 있었죠. 결국 어벤저스를 전부 모으고 싶다면 전제품을 구입해야 했달까요?


이 부분도 참 대단하죠. 마을을 구성하고 이런 저런 자동차를 갖추고 나면, 정말 진짜 도시처럼 도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물론 레고에서는 그런 도로와 보도가 갖춰진 멋진 바닥판을 팔고 있습니다. 값은 제법 비싸지만, 제대로 도시 디오라마를 갖추고 싶다면 꽤 매력적인 제품일 거에요. 오른쪽 위는 기차 모델 중 하나인데요. 기본으로 제공되는 레일은 그리 길지 않죠. 그리고 철도 모형에서는 철로를 길게 뽑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마찬가지로 궤도와 구부러진 정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훌륭한 철로를 팔고 있습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요.


마지막으로, 앞에서 빼먹었지만, 레고에는 '미니 피겨' 시리즈가 있습니다. 총 16종의 다양한 미니피겨들을 몇 달마다 내놓는데요. '블라인드+랜덤'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돈을 주고 어떤 걸 사게 되는 지 모르는 거죠.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또는 16종 전부를 수집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번 구매를 해야 하는데요. '돈을 주고 원하는 것을 구입하지 못한다.'라는 상황이 오히려 좀 더 역설적인 재미를 주기도 하더라고요. 밀봉된 봉지를 겉에서 만지작거리면서 어떤 제품인지 추측하고, 실제 뜯어봤을 때 일치/불일치할 때의 재미도 있고 말예요.


이렇게 지금까지 레고 사의 판매 전략을 ARM funnel 틀로 살펴봤는데요. 유저의 유입, 유지, 수익화 부분 모두에서 교과서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물건을 팔려면 레고의 사례에서 많은 걸 배울 수도 있겠고 말예요.



ps: 판매 가격은 인터넷 등에서 찾은 것이라 실제 판매가와는 다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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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무민 2012/08/24 06:54 # 답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신의 취미생활을 이런 식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군요!!
  • 루루카 2012/08/24 07:50 # 답글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 김윤정 2012/08/24 09:08 # 답글

    우왕 재밌어요
  • 까까 2012/08/24 10:36 # 삭제 답글

    우왕 저도 레고 사고 싶네요..
  • 토나이투 2012/08/24 13:01 # 답글

    좋은 글 잘읽고갑니디
  • 김보람 2012/08/26 12:06 # 삭제 답글

    우와 정말 재미있어요!!ㅠㅠb 레고 사고싶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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